‘타는 목마름으로’ 독재에 맞선 시인 김지하…그가 걸어온 길


시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으로 잘 알려진 시인 김지하가 8일 별세했다. 향년 81세.

토지 문화재단 관계자 이날 이날 투병 투병 생활 을 하던 시인이 8 일 오후 4 시경 강원 원주시 자택 에서 타계 했다 ”고 밝혔다. 고인과 함께 살던 차남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부부가 임종을 지켰다.

고인의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김지하는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의 필명이다. 이름처럼 고인은 과거 군사 독재정권에 맹렬하게 저항한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라는 평가를 받는를 1941년 전남 목포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9년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19 혁명에 참여했 참여했 참여했. 당시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했다. 1964 년 한일 국교 에 반대 한 ‘서울대 6 · 3 한일 회담 반대 학생 총 연합회’ 소속 으로 활동 하다 체포 돼 4 개월간 됐다 됐다. 1980 년 5 · 18 광주 화 화 운동 이후 수배 를 피해 항 만 인부나 광부 로 일 하며 도피 생활 을 이어가야 했다.

고인은 1970년 월간지 ‘사상계’에 풍자시 ‘오적'(五賊)을 발표해 구속됐다. ‘오적’ 은 300 줄 한 한 풍자시로 독재 부정 하게 부 부 축적 한 재벌, 국회 의원, 고급, 장성, 장차관 을 을 사오적 에 빗댔다. 판소리 가락을 도입하고 난해한 한문을 차용해 풍자했다. 정부는 사상계를 폐간한데 이어 오적을 실은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을 압수했다. 고인을 비롯해 사상계 대표와 편집장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그해 구속됐다. 이어 고인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체포된 후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징역으로 감형로.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민주 화 이후 2015 년 법원 은 고인 이 필화 필화, 민청 학련 사건 으로 억울하게 옥살이 를 했다며 15 억 원의 국가 배상 판결 했다 했다.

그는 참여시인이자 민중시인이었다. 1969년 ‘시인’지에 시 ‘황톳길’과 ‘비’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70년 12월 첫 시집 ‘황토’를 출간했다. 그의 시는 재기 넘치는 풍자 정신을 보여준다. 옥중에서도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열망을 아름답게 형상화한 시들을 선보였다. 이에 민주화의 상징이자 민족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추앙받았다.

1987 년 제주 4 · 3 사건 을 시 ‘한라산’ 을 발표 국가 보안법 위반 으로 투옥 된 된 이산하 은 은 고등 고등 2 학년 때 ‘오적’ 을 읽고 이것 이 진짜 시인 이라는 이라는 생각 들었다 오적 며 며 읽고 이것 이것 진짜 시이고 시인 이라는 생각 이 들었다 며 며 며 꽁꽁 꽁꽁 이것 이것 진짜 시이고 시인 이라는 생각 들었다 들었다 며 며 며 꽁꽁 꽁꽁 이것 유신시대에 뜨거운 피를 가진 문학청년들에겐 충격적인 영향력을 준 시를 쓴 분이다. 책상에 앉아서 글만 쓰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 시인”이라고 평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학문하는 사람들이 지식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고인은 1970년대 저항운동을 하며 언행이 일치하는 삶을 산 분”이라며 “자신이 터득한 사상을 글로 표출했다는 점에서도 큰 인물 이었다”고 말했다.

고인은 1971년 가수 김민기와 함께 야학 활동을 시작했다. 2년 후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인 고 박경리 선생의 외동딸 김영주와 결혼했다.

고인은 1980년대 이후 생명사상을 정립하는 데 몰두했다. 고인은 옥중 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서적을 탐독하면서 생명사상을 깨우쳤다. 선불교, 동학, 생태학 책을 섭렵했다. 그는 생명사상과 관련된 여러 종교들을 포괄적으로 수용했다. 1990년대에는 절제의 분위기가 배어나는 내면의 시 세계를 보여줬다. 1992년 그 동안 써낸 시들을 묶어 ‘결정본 김지하 시 전집’을 출간했다. ‘중심의 괴로움'(1994년), ‘화개'(2002년), ‘유목과 은둔'(2004년), ‘비단길'(2006년), ‘새벽강'(2006년), ‘못 2009년), ‘시김새'(2012년) 등의 시집을 꾸준히 펴냈다. 2018년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마지막으로 절필 선언을 했다.

고인 은 1991 년 대생 강경대 씨 가 경찰 에 맞아 숨지고 에 항의 하는 분신 자살 이 이 잇 한 일간지 에 ‘죽음 굿판 굿판 을 걷어 치우라’ 라는 을 기고 해 논란 이 이. 진보 진영에서는 “변절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10년 뒤 ‘실천문학’ 여름호 대담에서 칼럼과 관련해 해명하고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2012 년 박근혜 정부 당시 대선 후보 후보 를 공개 하고 진보 문학 평론가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 교수 를 비판 했다. 이 때문에 고인은 말년에 진보 진영 문인들과 교류가 적었다.

이근배 시인 은 “1970 년대 뿐 아니라 논객 조차도 군부 세력 을 비판 하는 글 과 시 를 못 쓰던 시절 고인 은 쓰기 를 두려워 하지 않았다 않았다. 박정희가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오적’을 발표한 고인은 유신 시대의 지성이다. 고인만큼 정치적으로든 사상적으로든 당시 폭발적인 문인은 없었다”고 말했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 회장은 “그야말로 대시인이자 세계적인 시인이 떠나갔다”고 애도했다.

고인은 명지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국대학교, 원광대학교에서 석좌교수를 지냈다.

유족으로는 장남 김원보 작가와 차남 세희 이사장이 있다.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이호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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